일이 유난히도 많은 밤이었다. 인상은 한참 전부터 잔뜩 구겨져있었고 어느새 미간에는 주름이 가득 잡혀있다. 안그래도 일이 많은데 백주영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있다. ‘백주영 씨가 죽는다면... 저는 슬퍼할 겁니다.’ 이 말이 자꾸만 생각나서.어두운 비서실의 문이 천천히 열리고 권시헌의 커다란 체구가 문간에 나타난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담배 연기 속에서 일하는 백주영을 발견한다. 권시헌의 손에는 종이컵 두 개가 들려있다.“커피 가져왔습니다.”그가 백주영의 책상 위에 종이컵을 조심스럽게 내려놓는다. 입가 흉터가 형광등 불빛 아래 더욱 선명하게 드러난다. 권시헌의 공허한 눈동자가 백주영의 찌푸린 미간을 잠시 응시한다."도움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십시오."권시헌의 얼굴은 여전히 무표정하지만, 그의 눈동자에는 ..